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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애님의 글입니다. ><P><SPAN style="FONT-SIZE: 12pt"></SPAN></P> ><P style="-webkit-tap-highlight-color: rgba(0, 0, 0, 0)" class=txt __dttjindo__id="e146901794269051157696"><SPAN style="FONT-SIZE: 12pt">제사의식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종묘건축을 이해할 수 없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종묘(</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宗</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廟</SPAN><SPAN style="FONT-SIZE: 12pt">)는 다른 말로는 궁묘(</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宮</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廟</SPAN><SPAN style="FONT-SIZE: 12pt">), 대묘(</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大</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廟</SPAN><SPAN style="FONT-SIZE: 12pt">), 태묘(</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太</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廟</SPAN><SPAN style="FONT-SIZE: 12pt">), 종조(</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宗</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祧</SPAN><SPAN style="FONT-SIZE: 12pt">), 침묘(</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寢</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廟</SPAN><SPAN style="FONT-SIZE: 12pt">)라고도 하는데, 종묘에서 ‘종(</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宗</SPAN><SPAN style="FONT-SIZE: 12pt">)’은 마루, 으뜸, 근본을 뜻하고, ‘묘(</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廟</SPAN><SPAN style="FONT-SIZE: 12pt">)’는 위패를 모신 사당을 의미한다. 즉 종묘는 왕조의 역대 임금과 비, 그리고 추존(</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追</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尊</SPAN><SPAN style="FONT-SIZE: 12pt">)된 임금과 비의 신위(</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神</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位</SPAN><SPAN style="FONT-SIZE: 12pt">)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용도의 건물이다. 추존되어 종묘에 모셔진 임금의 신위로는 당시에는 폐위되었던 단종 같은 왕의 것도 있고, 조선왕조의 시조인 태조(</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太</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祖</SPAN><SPAN style="FONT-SIZE: 12pt">)의 4대 조상의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연산군과 광해군은 폐위된 채로 종묘에 모셔지지 않았다. 이는 종묘에 신위를 모실 지의 여부 및 정전, 영녕전 중 어느 곳에 모실 지의 여부까지도 후대의 평가에 의하여 엄격하게 구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종묘는 원래 중국의 왕실에서 조상의 위패를 모셔두던 사당(</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祠</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堂</SPAN><SPAN style="FONT-SIZE: 12pt">) 건축을 의미했다. 이미 중국에서 고대사회의 규범이 완성된 시기로서 태평성대였다고 말하여지는 우(</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虞</SPAN><SPAN style="FONT-SIZE: 12pt">)나라 때에 시작하였다고 하며, 주(</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 __dttjindo__id="e146901797100248479946">周</SPAN><SPAN style="FONT-SIZE: 12pt">)나라 때 사회의 신분계급에 따라 부지 안에 배치시키는 사당의 수를 제한하는 규정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규모에 대한 이 원칙은 항상 불변하였던 것은 아니었으며, 각 시대의 왕조 특성에 따라 다양한 해석 및 적용이 이루어졌다고 알려져 있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삼국사기(</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三</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國</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史</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記</SPAN><SPAN style="FONT-SIZE: 12pt">)' 등의 옛 문헌기록을 보면, 한반도에서도 이미 삼국시대에 조상을 위해 제사를 모시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던 건축물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규범화된 정교한 제도로써 종묘 및 제례, 제례악을 수용한 것은 통치이념으로써 유교를 받아들였던 고려시대에 이르러서였다고 알려져 있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조선 시대의 종묘는 서울의 성곽 안쪽에 북쪽 편으로 치우쳐서 위치하고 있다. 서울에 종묘가 처음 세워진 것은 1395년(태조 4년) 9월 29일로, 경복궁과 함께 준공하였다고 한다. 서울의 종묘가 조선왕조 최초의 종묘는 아니었다. 조선왕조 최초의 종묘는 개성에 고려왕조의 종묘를 부수고 그 위에 지어졌었다고 전하고 있다. 임금이 거주하는 수도[도성(</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都</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城</SPAN><SPAN style="FONT-SIZE: 12pt">)]를 지금의 서울로 옮기면서 종묘를 새로 지은 것이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이전 고려 왕조의 수도인 개성의 종묘는 도성 밖에 있었으나, 서울의 종묘는 조선 왕조 개국 당시 서울의 중심 궁궐이었던 경복궁에서 볼 때 좌측 ㅡ 동쪽 ㅡ에 위치한다. 조선시대에 종묘를 처음 건축하면서 당시 건국의 주체인 사대부들은 중국의 이상적인 제도에 대하여 연구하였고, 이전의 고려왕조에서 적용하고 있었던 제도와 결합시켜서 우리만의 독특한 제도로서 다시 만들어 내었다. 건물의 입지에서부터 건물의 세부모습, 제례절차 및 제례 복장, 음악까지도 규범화되어 전해졌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서울의 종묘 건축은 크게 네 개의 건물군[일곽(</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一</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廓</SPAN><SPAN style="FONT-SIZE: 12pt">)]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정전 일곽, 영녕전 일곽, 어숙실 일곽, 그리고 향대청 일곽이다. 정전과 영녕전 일곽은 임금의 신위를 모신 종묘의 중심 건물군이다. 어숙실 일곽은 제례 때에 임금이 머무르며 재계(</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齋</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戒</SPAN><SPAN style="FONT-SIZE: 12pt">)하던 용도의 건물군이다. 마지막으로 향대청 일곽은, 일종의 부속건물로써, 제례 때 사용하는 향축폐(</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香</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祝</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幣</SPAN><SPAN style="FONT-SIZE: 12pt">)나 제례용품을 보관하던 건물군이다. 이러한 구성은 태종과 세종 때에 완성된 종묘의 기본 틀로써, 현재까지도 계속 유지하여 온 것이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그러나, 현재 존재하는 종묘는 창건 당시부터 존재하던 건축물은 아니다. 임진왜란때 소실한 것을 선조 때부터 복구하기 시작하여 광해군의 즉위와 함께 새롭게 지은 것이다. 새롭게 지었다고는 하나 그 이전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니 창건 당시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셔지는 신위의 수가 증가하면서 크게 세 번에 걸친 증건(</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增</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建</SPAN><SPAN style="FONT-SIZE: 12pt">)이 있었다. 이 때의 기록들이 의궤(</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儀</SPAN><SPAN style="FONT-SIZE: 12pt" class="word_dic hj">軌</SPAN><SPAN style="FONT-SIZE: 12pt">)로 남아 있어서 변화 모습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종묘는 1995년 12월에 독일의 베를린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정기총회의 의결을 거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종교적 건축으로, 유교의 의례행사를 담는 건축으로, 예전의 제도와 복장, 음악이 남아있는 건축으로서의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유교에서 나타나는 의례적 건축의 모범으로서 다른 조선시대 건물의 형태에 영향을 준 건물로도 가치가 있다.</SPAN></P> ><P><SPAN style="FONT-SIZE: 12pt"></SPA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