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진이란 무엇인가?

1.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촉진자는 단순히 모임을 진행하는 사회자도 아니고 지식의 전달자 노릇이나 하고 있는 강사도 아니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서 게임이나 도입하고 앵무새처럼 진행 메뉴얼이나 외웠다고 해서 촉진자가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촉진이란 참가자들의 삶의 태도에 영향을 미쳐서 참가자들로 하여금 좀더 사람다운 사람이 되도록 도움을 주는 일이다.

 

촉진자는 참가자들이 끊임없이 새로워지도록 자극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촉진자는 자기 스스로가 항상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어야 하며, 잠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비록 완성된 인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성장이 정지된 사람이거나 배움을 중단한 사람이라면, 그는 다른 사람들의 존경의 대상이 될 수는 있겠지만 바람직한 촉진자가 되기는 어려운 사람일 것이다.

 

가장 많이 배워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는 좀처럼 배우려 들지 않으면서 남들을 가르치려고 드는 사람들이다. 참가자들은 이런 사람을 만나면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가진 것도 없으면서 남을 돕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거나 설령 가진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자기가 잡은 ‘고기’를 나누어 주기만 하고 ‘고기를 잡는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촉진이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즉, 참여자의 자발적 행동을 자극하고 돕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여자들의 문제를 대신 떠맡아서 해결해 주고 칭찬이나 존경을 받아내는 일이나 하고 있으면서 좋은 촉진자가 되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촉진자가 얼마나 멋지고 훌륭하게 촉진했는가가  아니라 그 촉진의 결과로 참여자가 무엇을 배웠으며 얼마나 제대로 배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촉진자는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참가자들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촉진자로서 당신의 임무는 참가자들에게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가자들로 하여금 자기 스스로를 이해하고, 용납하고, 수용하고, 사랑하도록 도와야 한다.

‘되어져야 할 모습’과 ‘현재의 모습’사이의 차이를 일깨워 주며, 끊임없이 새로워지려는 욕구를 자극해야 한다. 그러니 적당히 시간이나 때우겠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한순간 한순간도 아껴 쓰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임해도 어려울 것인데 시간이나 때우겠다는 심정으로 어떻게 촉진이 되겠는가?

 

능력 있는 촉진자란 머리를 써서 사람을 가르치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슴을 열고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입으로 남들을 타이르는 사람이 아니라 귀를 기울여 그들의 마음을 들으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참가자들은 모든 부분에서 탁월한 능력을 갖춘 완전한 촉진자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솔직하고 자신의 부족한 면이 어떤 면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촉진자를 원할 뿐이다.

그런데도 참가자들이 기대하는 그런 촉진자를 만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2.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가

 

촉진을 하기 위해서는 참가자들이 서로서로 상대방의 입장에 서며, 상대의 이야기를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참가자들은 평소에 자기 입장에만 서 있는 태도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그런 참가자들로 하여금 상대에 입장에 서도록 하게 하는 일간단한 일은 아니다. 때로는 가르치기도 해야 하고 시범도 보여야 하며 그보다 먼저 촉진자가 지속적으로 상대의 입장에 서 있어야 한다.

촉진자는 참가자들에게 배우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오도록 자극을 주어야하며 참가자들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도록 도와야 한다.

 

참가자들은 서로가 서로에게서 배운다. 그러므로 촉진자는 참가자와 함께 참여해서 서로서로 배우고 가르치기도 해야 하지만 집단 내에서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그 때문에 당신은 모든 참가자들에게 매력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

참가자들이 당신을 좋아하면 할수록, 믿으면 믿을수록, 따르면 따를수록, 더욱더 좋은 학습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당신은 모든 참가자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참가자들이 어떤 이야기이든 자신의 이야기를 당신에게 편안하게 터놓고 얘기하고 당신이 당신 자신을 그들에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출발점이다.

 

사람을 단정 짓거나 규정짓지 마라.

답답한 사람, 솔직한 사람, 대범한 사람, 소심한 사람 등으로 말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소심한 행동을 하는 순간은 있을지라도 소심한 사람은 있을 수가 없는 법이다.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이런 단정이나 규정을 지어 두면 그 한정된 범위 안에서만 그들을 보기 때문에 자유스러움을 잃어버린다.

생각의 굴레를 벗어버려라.

 

끊임없이 공부하라. 집단에서는 촉진자가 자기 자신이나 참가자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배우고 발견해 나가는 그 과정이 바로 모든 참가자를 가르치는 과정이 된다. ‘배우는 방법을 배운다’라는 것이 이를 뜻하는 말이다. 아무리 훌륭한 촉진자라고 할지라도 자기는 배우지 않으면서 남을 가르치려고 든다면 그 순간에 그는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나 배운다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배움의 목표는 나 스스로가 새로워지는 것이다.

 

오랫동안 닫아두었던 마음의 문을 열고 감정의 곳간 속으로 들어가 보아라. 그 속에는 쓰레기 같은 감정(미움, 원망, 저주, 한탄, 고독 등등)들이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이런 쓰레기들을 마치 보물인 양 착각하고 소중히 간직하고 있지나 않는가?

이런 감정들을 찾아내서 하나하나 청소를 하라. 그렇게 해서 마음의 창고를 비워두어라. 마음을 비워두어야 온 세상 모든 것을 받아드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릇이 큰 사람이란 이렇게 마음이 빈 사람을 이야기한다.

 

그 다음에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 기준들을 하나씩 따져 보아라. 어쩌면 그 동안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지켜왔던 그런 가치 기준들은  남에게 빌려 왔거나, 아니면 남으로부터 강요당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들이 당신의 마음속에 들어와 지금도 주인 노릇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또는 전혀 다른 상황인데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지는 않는지 검토해 보라.

감정이나 가치 기준의 노예가 되지 마라. 여기서 해방이 되어 주인이 되라. 당신은 당신 자신이 목적일 뿐 그 어느 것도 당신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자기 스스로를 노예로 삼은 촉진자들은 참가자들에게도 그런 시범을 보이거나 강요를 하게 될 가능성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룹의 성과를 참가자들의 소감이나 반응만으로 측정하려고 들지 마라. 필자는 그룹에서 실패했다고 하는 촉진자를 만났을 때는 별로 염려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알고 있으며, 어떻게 하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성과가 컸다고 이야기하는 촉진자들을 만날 때에 걱정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좀 더 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거나, 새로워지는 노력을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촉진자들이 진실로 염려를 해야 할 것은 실패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성공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잘못된 성공들은 언젠가는 자신과 참가자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3. 어떻게 해야 하는가

 

촉진이란 ‘참가자들로 하여금 내적으로 동기가 육성된 자발적인 사람이 되도록 돕는 일이며, 참가자들이 자기 자신이 되도록(to became his realself) 돕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참가자들의 관심을 그때 거기에서의 사실적인 일들에서, 지금 여기에서 느끼는 생생한 감정들에 초점을 맞추게 해야 한다. 평소에는 외면하고, 억압하고, 무시하고, 또 표현하기 힘들어 했었던 그런 감정들을 하나하나 포착하고, 표현하기 시작하면 거기가 바로 자기 자신을 만나는 출발점인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끊임없이 자극을 주어서 스스로를 직면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 비결은 참가자들이 그런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수영을 가르치려고 하면서 쓸데없이 교실에서 수영의 이론만 설명하려고 들지 마라. 수영복을 주고 바닷물 속에 집어넣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이 순간에 나는 어떤 감정들을 느끼는가?

이런 감정들을 느꼈을 때 나는 어떤 행동을 하는가?

등을 자문하게 하라.

‘감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을 ‘이성을 무시하라’는 말로 오해하지 마라. 어떤 참가자는 ‘감정을 표현하라’는 말을 ‘생각은 하지 말고 느끼기만 하라’는 말로 오해하기도 한다. 만약에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이성적인 자극도 서슴지 말라. 이성이니 감정이니 하는 것이 사람들이 그렇게 이름 지어 놓은 것일 뿐이지, 원래부터 다른 것은 아니지 않는가? 지난 한 T-Group에서의 예를 보자

 

A :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얼마나 만나보고 싶어 했는지 아십니까?

B : 그래요? 아주 반갑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저를 그렇게 만나고 싶어 했습니까?

A : 어쩐지 선생님을 만나면 무언가 도움을 받을 수가 있을 것 같아서요.

B : 그렇습니까? 그런데 저한테서 무슨 도움을 받고 싶었습니까?

A : 네. 저는 자신감이 없고, 뿐만 아니라 제 성격이 못마땅한 게 많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뵙고 난 뒤에 자신감을 얻었다는 친구들의 얘기를 듣고 그때부터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B : 아, 그랬군요. 그렇다면 당신이 진실로 만나고 싶어 했던 것은 당신 자신이 아닙니까?

 

이처럼 필자는 참가자가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되거나 잘못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되면 서슴지 않고 자극을 주는 편이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참가자들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며,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자기를 사랑하는 태도가 늘어나도록 돕는다.

 

자기를 직면하는 일과 똑같이 중요한 일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이 바로 남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은 어떤 점이 나와 다르며 어떤 점이 나와 비슷한가? 나와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어떤 이유가 있는가? 그들을 받아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따위를 끊임없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촉진자는 참가자들과 함께 어울려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용납하며, 수용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가능하면 입은 닫고 귀를 열어야 한다. 좋은 촉진자는 좋은 청취자이다. 마음의 문을 열고 남들을 받아들여라. 뜨거운 만남은 머리와 머리로 만나는 만남이 아니라 가슴과 가슴으로 만나는 만남이다. 나를 만나고 상대를 만나기 시작하면  새로운 세계가 보일 것이다. 그때까지 모든 참가자들이 열심히 참여하도록 도와야 한다.

 

 

4. 촉진의 사례

 

만남에 이르는 길을 간추려 보면 두 길밖에 없다. 그 중 하나는 나를 만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나 아닌 너를 만나는 것이다. 물론 참 만남에 이르려면 나와 너를 넘어서서 우리로 가야 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도 나와 너를 제대로 만나야 한다. 그럼 다음의 예를 보면서 만남으로 이르는 길을 찾아보도록 하자.

 

 

사례1

 

A씨는 T-Group에 참가했었는데 그때 촉진자인 B씨가 참가자들에게 상담의 요령을 설명하면서 옛날에 함께 상담공부를 하면서 다른 선생님한테서 들었던 사례를 마치 자기 경험인 양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이때  A는 B를 보고 마음속으로 B에 대해서는

- 거짓말을 잘도 하는군.

- 먹고 살기 위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 이제 보니 정말 형편없는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고 한다.

 

또한 자기 스스로는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을 했고

- 앞으로 저런 친구는 조심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으며

- 이번 모임에서는 소득이 컸고 ”사람이 어디에 가든지 정직해야 하겠구나 라는 것을 깊이 느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이런 것이 모임의 성과인 양 착각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선 이 경우에  

A씨는 이 경험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좀 더 깊이 이해한 것도 없고,

B씨를 좀 더 깊이 이해한 것도 없으며,

두 사람의 만남이 좀 더 깊어진 것도 아니고,

자기 자신이 새로워지거나 B씨가 새로워지도록 도와준 것도 없다.

 

오히려 B씨를 거짓말쟁이로 단정하고, B씨와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으며,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하겠다고 자기 다짐만 굳힌 것뿐이다. 그렇다면 이 체험을 통해서 A씨는 무엇을 배웠다는 말인가?

 

이런 경우에 A씨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A씨가

자기 자신을 만나고

B씨를 만나고

자신의 대인관계 행동을 분석하고 새로운 행동 패턴을 익히도록  도와야 한다.

 

1) 자신과의 만남

자기와 만나기 위해서는 A씨는 자신에 대해서 몇 가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우선 A는 ‘B가 거짓말을 한다’라고 생각했는데 B의 어떤 행동에서 그가 거짓말을 한다고 보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A의 말에 의하면 “B는 강의 도중에 다른 강사가 예로 들었던 사례를 마치 자기 자신이 경험했던 사례처럼 이야기했고” A는 이런 B를 보고 ‘거짓말을 한다’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상대의 어떤 행동을 내가 어떻게 지각하는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상대와의 관계를 통해서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 뿐만이 아니라 B의 행동에 대해서 A가 할 수 있는 수많은 다른 지각들. 예를 들면

 

열성적이다.

진지하다.

재미있게 강의하려고 애쓴다.

 

등에 관해서는 별 관심이 없고 그 중에서 유독 거짓말을 한다는 측면을 강하게 받아들이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찾아보면 A는 사람을 지각하는 자기 자신의 패러다임을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에 사용하는 자기 자신의 판단 기준이나 가치 기준을 이해할 수 있는 길도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행동을 지각하는 나의 패러다임을 이해하고 나면 그 다음에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나의 반응 형태이다. 이때 A씨는 B가 거짓말을 한다고 보고, B에 대해서 몇 가지 감정을 느꼈었다고 했는데 우선,

 

무시하고 싶고,

경멸스럽고,

못마땅하고,

싫고,

한심스럽다.

 

고 느꼈다고 했다. 이처럼 내가 어떤 감정들을 느꼈는지 하나하나 곰곰이 따져 보면 그에 대한 나의 느낌들이 분명해진다.

그런 다음에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나는 왜 이런 느낌들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는지 자기 통찰을 시작해야 한다. 어릴 때에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속아서 아주 불쾌했던 기억이 남아 있거나, 거짓말을 했다가 혼이 난 경험이 있던가, 아니면 가정이나 사회에서 정직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적 배경 속에서 자라났거나 하는 등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자기 통찰을 통해서 자기 자신과 만나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이 세상에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느냐?”라는 생각만 하고 있다면 이것은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2) 상대와의 만남

이처럼 자기 통찰을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B를 만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우선 B의 어떤 행동을 내가 거짓말한다고 보았느냐? 를 찾아야 한다.

위의 사례에서 A는 B가 남에게서 들은 사례를 마치 자신의 경험인 양 이야기하는 것을 ‘거짓말을 한다’라고 지각한다. 이때 A는 B의 행동의 밑바탕에 있는 의도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사례에서 B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상담이란 주로 듣는 활동이다’라는 것이며 B의 의도는 이 내용을 ‘가능하면 재미있고 실감나게 전달하려고’ 남의 사례를 마치 자기 사례처럼 이야기했다고 하자. 이렇다면 A는 B의 내면에 있는 좋은 의도는 보지 못하고 ‘남의 사례를 마치 자기 사례처럼 이야기 한다’라는 부분만을 강조해서 부정적인 면만 강하게 받아들인 셈이 된다.

 

이런 경우처럼 ‘상대가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할 때에 그 사람에게는 그 나름대로는 불가피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이유를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3) 새로운 행동

나를 만나고 상대를 만나기 위한 내 행동을 돌이켜 본 다음에는 내가 그 사람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취한 행동은 무엇인가를 따져 보아야 한다. 이때에 A는 B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고서는

 

마음속으로 B를 무시하는 감정을 느꼈고, “먹고 살려고 별짓을 다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으며,

나는 저렇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겠다 라고 결심을 했다

 

이런 A의 반응은

 

상대의 입장에 서서 상대를 이해하거나 공감·수용한 것도 아니고,

리더십을 발휘해서 상대의 잘못된 행동을 수정할 수 있도록 변화를 촉진한 것도 아니다.

 

상대에 대해서 거짓말한다는 나쁜 인상만 가지고 나는 저렇게는 행동하지 않겠다는 자기 결심만 굳히고 있다. 이런 패러다임이 전형적인 관계 단절의 패러다임이다. 이때 A가 가지고 있는 관계 단절의 명분은

 

이야기를 해 봐야 안 통할 것이다.

내용은 전달 안 되고 기분만 상할 우려가 있다.

상대가 받아들여주지 않을 것이다.

등이다.

 

적어도 A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한 A는 자기 자신도 만날 수가 없고 상대도 만날 수가 없다. 왜냐하면 A는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상대의 탓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 때문에 내가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행동에 대한 선택권을 자기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 속수무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 A가 통찰해 보아야 할 것은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내가 한 생각이기 때문에 ‘나는 왜 상대에게 작용을 가해 보지도 않고 미리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하고 자문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식으로 남의 탓으로 돌리는 태도가 있구나’하는 것도 알아차려야 한다. 이처럼 상대의 의도를 자기 나름대로 짐작하거나, 자기 행동의 원인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태도는 자기 스스로를 타인으로부터 소외시키는 이기적인 것이며,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사랑도 만남도 찾기 힘들 것이다.

 

이처럼 상대방을 대하는 자기 자신의 태도에 대한 통찰이 되었으면 그 다음에는 자기가 상대에게서 받은 부정적인 인상, 즉 이 경우에는

 

거짓말을 한다.

이야기를 해 보아야 안 통할 것이다.

 

라는 두 가지 생각이나 감정을 자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강하게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상대에 대해서 안 좋은 인상을 받아도 금방 잊어버리고 편하게 대하며,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른 긍정적인 면을 받아들이고 좋은 관계를 맺어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한 번 부정적인 인상을 받으면 두고두고 그 인상을 잊을 수 없으며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면은 아예 보려고 들지도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측면들을 따져 보는 것이 내가 남들과 관계를 맺는 패러다임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럼 이때에 A가 B에 대해서 취했어야 할 바람직한 행동이나 시도는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은 다음의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가 있다. 하나는 B가 그런 행동을 한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그 행동을 보고 내가 느낀 거부감을 분명하게 말해 주는 일이다.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려면 상대에게 물어보아야 하는데 이때에는 상대가 마음이 편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많은 경우에 상대에 대한 좋지 않은 기분이 작용이 되어서 단순한 물음이 아니라 캐묻거나, 비난조가 되기 쉽고 그 때문에 상대는 오히려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다. 감정적으로 편안하고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단순한 질문이 도움을 준다. 예를 들면

‘B씨, 조금 전에 당신이 상담 요령을 설명하면서 K 선생님한테서 들었던 사례를 마치 B씨 자신의 사례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 같았는데 나는 B씨가 어떤 의도로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불편하지 않으면 그 의도를 좀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라는 식으로 편안하고 분명하게 묻는 게 좋겠다.

 

상대에게 내가 느낀 거부감을 알려주는 행동은 좀 더 까다롭다. 이때에는 두 가지가 분명해야 하는데 하나는 상대에 대한 나의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대화 요령이다.

우선 나의 태도는 첫째로는, ‘내가 정말로 상대를 위해서 이야기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 화풀이를 하고 있을 뿐인가’하는 것이고 둘째로는 ‘나는 상대에게 느낀 감정을 받아달라고 요구하고 있는가, 아니면 행동을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는가’이다.

 

내 화풀이나 하고 있거나 행동을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다면, 상대에게 내 방식대로 살라고 강요하는 셈이 되고 상대를 무시하는 태도이다. 습관적으로 이런 행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상대를 무시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나의 이야기를 듣고 행동을 고치고 안 고치고는 너의 자유이고, 내 심정을 받아달라는 것은 나의 권리이다’라는 분명한 태도가 있어야 상대에게 제대로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물론 이럴 때에는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친밀감, 신뢰감, 존경심 등이 영향을 미치며, 상대의 성격, 수용능력, 감정 상태나 나의 성격특성, 감정상태, 말투 등이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을 고쳐주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태도로 대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이럴 때는 만약에 B씨가 받아들일 마음가짐만 되어 있다면 ‘B씨가 이러이러하게 이야기했을 때 내가 듣기에는 거짓말처럼 들렸고, 거부감이 생겼고,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궁금했고, 당신에 대한 신뢰감이 줄어들었습니다’와 같이 자기 심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것이 좋다.

 

집단에 참가하는 많은 사람들이 A씨와 같은 착각을 한다. 집단이란 이런 식으로 지적이나 받고, 개선 목표를 설정하고,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결심이나 하자고 모이는 자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집단이 일반적인 수양회나 반성회, 자기 비판모임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사례 2

 

앞의 사례는 A가 B의 행동을 보고 지적을 하려고 시도했을 때의 사례이고 이번에는 A가 피드백을 받았을 때의 사례이다.

 

A의 T-Group에 참가해서 촉진자 b에게서 “당신은 지적을 할 때에 처음에는 강하게 시작하는 것 같은데 뒤에 가서는 우물우물하고 뒤끔이 흐려지는 것 같다.” 라는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이 지적을 받고 A는 평소에 존경하던 B에게서 오래간만에 지적을 받았기 때문에 우선 지적을 받은 사실에 감사했고, 나에게 그런 문제점이 있구나 하고 자기 발견을 했고, 앞으로는 지적을 할 때에는 “초지일관해서 제대로 끝까지 밀어봐야겠다.”라고 결심을 했다고 하면서 T-Group 에서는 얻은 것이 컸다고 다녀와서 나에게 이야기를 했다.

 

위의 사례에서 나타난 A의 행동을 나의 관점에서 보면 A는 B와 만나려고 하지는 않고 B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행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B가 자신의 어떤 행동을 뒤끝이 흐리다고 보았는지 A가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했고,

B의 눈에 뒤끝이 흐리다고 보인 행동을 할 때 A는 자신이 무슨 의도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했고,

지적을 해 준 B와의 만남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태도는 주체성 없는 태도이며 자기중심적인 태도이다. B의 지적을 받은 A는 “내가 B에게 안 좋게 비쳐졌구나” 라고 생각을 하고, 남들에게 이런 소리를 더 안 들으려면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 것인가?와 같이 자기 생각만 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외형적으로는 B와 마주 앉아서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내면으로는 B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A가 자기 자신을 외면했다고 하는 것은 ‘뒤끝이 흐리다’라는 B의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뒤끝이 흐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라고 결심한 부분이며, B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은 자기 개선만 생각하고 있지, B의 입장이나 심정을 받아들여 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선 이 장면에서 A가 B를 만나려면

 

 

① 의도 : 처음에는 강하게 시작하는 것 같더니 뒤에 가서는 우물우물하고 약해져서 맺고 끊는 데가 없다.

② 기분 : 답답하고, 아쉽기도 하고, 안타깝고, 딱하다. (B가 느끼는 기분의 종류와 정도를 정확하게 공감 수용한다면 B와 만날 수 있다.)

③ 성격 : 평소에 온화하고, 부드럽고, 원만하고, 여유 있어 보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지적을 할 때에는 서슴지 않고 따끔하게 지적을 하는 분이신데, 그런 B가 제가 뒤끝이 흐리다고 보았으면 더욱 답답하시지 않았겠습니까?

④ 숨은 뜻과 기분 : 그러나 그렇게 아쉽고 답답하게 보면서도 저를 위해서 이런 충고를 해 주시는 것이 더욱 고맙고, 한번 남자답고 결단력 있게 행동해 보라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⑤ 칭찬, 인정 : 마음이 따뜻해서 지적을 할 때에도 듣는 사람이 부끄럽거나, 야단맞는 기분이 안 들고, 고맙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며, 또 그런 마음씨뿐만 아니라 대결, 지적의 요령을 설명하면서 실제로 나에게 지적을 하면서 시범까지 보여 주는 그 점이 바로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B의 이야기를 듣고 그 내면에 깔린 B의 ① 의도, ② 기분, ③ 성격, ④ 숨은 뜻과 기분을 어느 수준까지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에 따라서 B와 만나는 깊이가 결정될 것이며 B를 ⑤ 칭찬, 인정, 지지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B와 친밀감과 신뢰감을 조성하는 데 한몫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 다음에 분명하게 해야 할 일은 B가 어느 때 나의 어떤 행동을 보고 뒤끝이 흐리다고 보았는지를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내가 미리 알고 있었다면 물어볼 필요가 없겠지만 만약에 모르고 있다면 B에게 요청을 해서 질문을 해 보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저의 어떤 행동을 보시고 뒤끝이 흐리다고 보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하고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랬다면 B는 조금 전에 A가 D에게 이야기할 때에 그런 인상을 받았다는 식으로 이유를 댈 수 있을 것이다. 조금 전에 A는 D에게 지적을 한 것이 있었는데 그때에 D가 완강하게 거부한다는 인상을 받았고 ‘내용은 전달도 안 되는데 기분만 상하게 해서는 도움이 안 되겠다’라고 판단하고 중단한 적이 있었다. 그 순간의 A의 행동을 보고 B는 A가 뒤끝이 흐리다고 본 것이다. 이 점을 분명하게 하고 나면 A는 자신이 ‘뒤끝이 흐린 사람’이 아니라 ‘받아들이지 않는 지적은 하기 싫어하는 사람’으로 자기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실은 나는 D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아서 지적을 중단했는데 그 모습을 B는 뒤끝이 흐린 것으로 보았군요’라고 B에게 내 행동의 배경에 대해서 이해를 받아야 한다(물론 여기서 다시 생각해야 할 일은 나는 D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는데 B는 대결을 하더라도 D에게 지적을 하기를 원했는지, 아니면 D가 받아들일 여지나 필요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았는지 등을 확실히 한다면 B와 A의 현상 인식의 차이점을 분명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B에게서 이런 지적을 받았을 때 A는 감정적으로는 부끄럽고, 고맙고, 당황스러웠지만 그 감정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은 ‘사실 그런 점이 좀 있습니다’라고 시인을 했다고 한다. 그런 다음 ‘앞으로는 뒤끝이 흐린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하겠다’고 결심을 했고 ‘그 결심을 오랫동안 마음에 간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분명히 해야 할 일은 ‘B는 A의 그때 그 순간의 한 행동을 보고 지적을 했는데 A는 자기가 늘 그런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A는 자신이 뒤끝이 분명한 행동을 할 때도 많이 있었을 터인데 그것은 깨닫지 못하고 B의 지적 때문에 오히려 문제를 하나 떠안게 된 것이다. 이런 태도로는 스스로에게서 자유스러워질 수가 없다. A는 B의 지적을 듣고

 

① 자기 이해 : “내가 이래서 이런 일이 생겼구나.” 라고 자신을 만나지 못했으며,

② 자기 용납 : “그런 행동을 한 자신이 부끄럽다.” 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③ 자기 사랑 : “나는 부족하다. 그런 내가 싫다.” 라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되고,

④ 자기 허용 : “사람이 살다 보면 뒤끝이 흐려야 할 때도 있다.”는 너그러운 태도도 갖지 못했고,

⑤ 자기 수용 : “부끄러운 감정, 당황했던 감정”을 수용하지 못하고 억압하거나 외면했다.

 

이러고서도 ‘그런 점이 있습니다. 앞으로 노력해서 고치겠습니다’라는 결심이나 하고서 집단에서 소득이 컸다고 한다면 이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