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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신원주2 | 작성일 | 2021-1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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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매일 비수를 자신의 가슴에 꽂는다! | 조회수 | 3556 |
첨부파일 | |||
칼럼의 주제가 조금 무섭다는 느낌이 들지만 뜻을 제대로 전달하고 생각을 하면서 내용을 읽어볼 것 같아서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 최근에 휴먼인큐베이터 진단하신 분 중에는 자녀의 진로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본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힘들어하셔서 상담을 요청하시는 분들이 늘었다. 쉽게 말해서 본인이 자녀를 조종하는 헬리콥터 맘인 것 같은데 사실은 자신도 부모로부터 똑같이 타인과 비교하면서 엄한 훈육을 통하여 통제와 조종을 받았던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과연 우리는 인간의 천성인 비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 답은 천천히 찾아보기로 하자. 우리나라의 경우 해방 이후 빈민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갈 정도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지만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는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걱정 가득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물론 최근에는 코비드로 인한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을 더해서 겪고 있지만 말이다. 우리는 부자들은 걱정을 덜할 것이라 생각을 하겠지만, 일찍이 부자가 된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의 불안감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하다. 왜 경제적인 조건이 더 좋은데도 행복감은 예전보다 훨씬 못할까? 아래의 글을 보면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때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당신은 그 나이에 무엇을 했는가?’라는 글이 있다. 푸이는 세 살에 즉위했다. 당신은 그 나이에 무엇을 했는가? 왕준개는 17세에 억대 재산을 가졌다. 당신은 그 나이에 무엇을 했는가? 항우는 24세에 군사를 거느리고 봉기했다. 당신은 그 나이에 무엇을 했는가? 저크 버그는 34세에 72조 원의 재산을 가졌다. 당신은 그 나이에 무엇을 했는가? 마화텅은 47세에 54조 원의 재산을 가졌다. 당신은 그 나이에 무엇을 했는가? 빌 게이츠는 60세에 90조 원의 재산을 가졌다. 당신은 그 나이에 무엇을 했는가? 리자청은 90세에 36조 원의 재산을 가졌다. 당신은 그 나이에 무엇을 했는가? (...) 글을 읽으면 일단 한숨부터 나올 것이다. ’그래, 이 나이에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또는 여러 가지 반응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 사람들은 나하고 다르잖아!‘ , ’아! 나는 헛살았네. 아무런 의미도 없이.‘ , ’억수로 부럽다!‘ , ’분명히 부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불렸겠지. 조사를 해봐야 돼!‘ ,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네. 확 죽어버릴까?‘ , ’나는 어떻게 살았는지 이참에 한 번 생각해볼까.‘ , ’좀 부럽긴 하지만 괜찮아. 나도 나름대로 세상을 열심히 살았으니까.‘ 등 여러분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실지 솔직히 궁금하다. 각자 어떤 하루를 보내고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지만, 세상에는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은 언제든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누구든지 일단 다른 사람과 경쟁하고 비교하기 시작하면 불안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필사적으로 앞으로 달려간다. 대개 사람들의 인생은 이때부터 비슷한 길을 걷게 되는데 과연 이렇게 살면서 행복할 수 있을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은 왜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려 드는지를 살펴보자. 비교를 한자로 쓰면 ‘比較’이다. 비(比)자는 두 자루의 비수(匕首)처럼 한 자루는 다른 사람에게, 한 자루는 자기 자신에게 꽂혀있다. 한자의 모양새처럼 남들과 비교하며 더 행복해지려고만 하는 것은 나의 마음속에 꽂혀있는 비수를 매일 찌르는 것처럼 자기를 학대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다른 사람과 비교하려고 할까?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를 빌리자면 두 친구가 숲에서 호랑이 한 마리를 만났다. 그러자 그중 한 명은 바로 가벼운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다른 친구가 말했다. “아무리 신발을 바꿔 신어도 호랑이보다 빨리 달릴 수 없어!” 그러자 그 친구는 “난 너보다 빨리 달리면 돼.”라고 대답을 했다. 이 이야기는 사람들이 남과 비교하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물론 생존을 추구하는 환경에서는 주변 사람보다 더 뛰어난 사람에게 더 많은 생존 기회가 주어진다. 비교는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 것은 맞다. 옛날부터 인간의 생존본능을 위하여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었다. 주변 사람보다 뛰어나야 마음 편히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는 피할 수 없는 비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자학하지 않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활용할 수 있을까? 우리가 비교를 하면 일반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있는데 부러움과 질투를 느낀다. 이 두 감정은 독립된 개체로 보이지만 실제는 남매와 같아서 그 뿌리는 하나이다. 지면상 부러움과 질투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는 스스로 찾아보기를 권하고 생략을 하고 중요한 것은 부러움보다 질투가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질투는 상대방을 얕잡아 보거나 적대시하고 심해지면 공격성까지 동반해 의도치 않게 남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질투심이 극에 달하게 되면 다른 사람을 파멸시키기도 하는데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이 그것이다. 누군가 말하길, 한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자신보다 특출한 사람을 모두 파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초를 잘 다져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전자는 ‘질투’, 후자는 ‘부러움’이다. 언뜻 보면 부러움이 긍정적인 감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두 감정은 모두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다. 자존감(自尊感)이 낮은 사람은 늘 남과 비교하며 부러움과 질투에 휩싸여 자신의 인생을 깊은 나락으로 몰고 간다. 자존감과 관련된 감정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다음 시간에 다루어보도록 하자. 우리가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는데 익숙한 이유는 자신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으며 어떻게 행복을 만들 수 있겠는가. 행복해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신을 중심으로 바깥에서 행복을 얻으려고 하는 것으로 ‘자극’에 대한 ‘반응’을 통해 자신을 만족시키는 방식인데 이런 만족은 외적인 자극으로 얻어지므로 짧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다른 하나는 자기반성을 통해 안정을 얻고, 마음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통해 안에서부터 자생하는 만족감과 행복감이다. 이런 종류의 행복감은 어떤 물질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큰 발전을 이뤘지만, 사람들의 정신생활은 이에 비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다수의 사람은 외적인 자극을 통해 자신을 만족시키고 물질적인 풍요로움으로 행복감을 얻지만 이러한 행복감은 오래가지 못한다. 바깥에서 행복을 얻으려고 할 때마다 반드시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부러움’과 ‘질투’의 감정이 일어나고 불안이라는 감정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심하게는 절망과 무가치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내면의 본질을 이해하고 정신적인 만족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마음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까? 부러움과 질투의 두 가지 감정을 사건 해결의 실마리로 사용해 보자. 질투할 때마다, 경쟁자가 사라지지 않는 게 원망스러울 때마다 부러운 마음을 갖도록 스스로 일깨워보자. 물론 질투를 부러움으로 전환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스스로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스스로를 일깨우며 자신이 부족한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좋아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잘 살아야 하는 이유가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아야지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서 마음이 평안할 때 자연스레 행복을 느끼게 된다. 글 서두에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날카로운 비수로 자신을 찌른다고 말했다. 조금 더하자면 자신뿐 아니라 주변의 가족이나 동료, 지인들에게도 비수를 휘두르는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러한 모든 것이 비교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굳이 휴먼인큐베이터 진단과 상담을 통해 솔루션을 받지 않더라도 누구나 쉽게 자존감을 향상시키는 기본적인 방법이 있는데 바로 ‘감사노트’를 적어보는 것이다. 자존감은 ‘자신이 세상에서 쓸모 있는 사람으로 자각’하는 것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은 물론이고 사랑하는 자녀도 엄밀하게 말하자면 축복받은 한 사람의 인격체로 절대 인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 시간부터 통제와 조종을 위한 ‘비교’ 따위는 내 근처에 얼씬 못하도록 저 먼 우주로 날려버리고 말이다. http://www.boa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163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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