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갈하고 세련된 옷차림에 고운 외모에서 힘든 일이라고는 경험하지 않았을 것 같은 30대 부인이 상담을 청해 왔다.

　그녀는 갑작스런 남편의 이혼요청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했다. 특별한 부부갈등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이혼이란 말은 너무나 생소했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남편은 장모님의 과도한 주도성이 싫다는 것이었다. 상황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부인은 남편에게 부부상담을 받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남편은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고, 결정은 확고하다고 했다.

　남편은 상담실에 한번 들러서는 장모·아내와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를 쏟아놓고는 다시 오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은 바로 짐을 싸서 집을 나갔다.

　부인은 혼자서 상담실에 오기 시작했다. 상담 초기, 부인은 이 상황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내내 울기만 했다. 상담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연애시절, 남편의 일방적인 애정공세에 결혼이 이뤄졌다. 배우자 선택이 주체적이지 않았다. 남이 주장을 하거나 결정을 해주면 따라가는 습성은 어린시절부터 형성된 것이었다. 주도성이 강한 어머니 밑에서 늘 따라가는 역할만 했던 딸이었다.

　그러나 친정어머니의 과도한 주도성에 대해 생각해보니 남편이 싫어하는 이유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아직도 어머니에게서 심리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것이 남편에게 매우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부인을 통해 들으니 남편이 처음에는 처가에 매우 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편은 부부갈등이 심한 부모밑에서 성장하면서 부모의 사랑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부모를 걱정하고 염려해야 했다. 결혼 초기, 장모님의 간섭이나 주도성은 오히려 행복한 경험이었다. 따뜻한 보살핌처럼 느껴졌고 그러기에 더 잘 해드리려고 애썼다. 그러면서 무의식중에 장모님이 자신을 인정해주고 어느 순간에는 그 주도성을 사위에게 넘겨주시길 바랐다.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간섭은 계속됐고, 늘 아이취급 당하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어느 순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집을 나간 남편은 간간이 전화를 걸어 법원에 이혼서류를 내자고 했다. 부인은 이혼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지만 좀 더 이혼에 대해 준비가 된 다음 도장을 찍고 싶어했다. 상담을 받으며어머니와의 심리적인 분리도 해냈다. 경제적인 독립도 했고, 차츰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혼을 알리며 새로운 삶에 적응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남편과도 웃으며 헤어질 자신이 생겼다. 마침 연락이 닿아 이혼서류 정리를 하자고 남편에게 말했다. 그런데 남편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혼하자던 자신을 후회하고 있다며 다시 합치자고 했다.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어줄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부인은 결혼, 이혼 또 재결합을 원하는 모습에서 남편의 반복되는 패턴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편안한 작별인사를 할 수 있었다.

　아쉬움이 남는다. 부부상담이 되었다면 이 부부가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 성장하는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서울사이버대 교수, 서울부부가족치료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