火는 禍를 낳는다

실체 없고 찰나에 生滅하는 화… 참으면 病, 터뜨리면 業 되어

호흡에 집중해 화를 觀察하면 잘 다스려져 편한 마음 갖게 돼

가장 幸福했던 시절 떠올리며 행복을 구하는 기도 반복하길

월호 스님·행불선원 원장 얼마 전 아는 스님 한 분이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화(火)를 너무 참으면 병이 되니 적당히 터뜨리며 살아야 한다고 진단했다고 한다. 드디어 스님에게도 화를 권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화를 너무 참아서 문제였다면 요즈음은 화를 너무 무분별하게 터뜨려 문제가 된다. 사귀던 애인이 이별하자 했다고 살인을 저지르고, 관공서의 보상이 적다고 국보급 문화재에 불을 지르며, 심지어 자신과 아무런 연관도 없는 불특정 다수에게 마구 화풀이하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불가(佛家)에서 화는 불에 비유한다. 공덕의 무더기를 태워먹는다고 보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나에게 평상시 친절히 대해 주어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가도 별일 아닌 일로 갑자기 내게 화를 내면 호의적 감정이 일시에 사라져버리게 된다. 결국 화는 재앙의 문(門)이다.

이처럼 화는 참으면 병(病)이 되고, 터뜨리면 업(業)이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화는 관찰해야 한다. 도적을 잡으려면 도적의 정체를 알아야 하듯, 화를 다스리려면 먼저 화의 정체를 파악해야 한다. 화는 실체가 없다. 작용이 있을 뿐! 마음 따라 일어났다 마음 따라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 자체가 실체가 없는데 어찌 화에 실체가 있겠는가? 화는 마치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아서 시시각각 찰나 생멸(生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켜보면 사라진다고 하는 것이다.

얼마 전 어떤 젊은이가 상담을 청했다. 사연인즉 정신적 갈등이 심해서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직장 내에 마음에 드는 여직원이 있어 친근하게 지내던 터에 다른 남자 동료 또한 그 여직원과 가까이 지내는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심지어 함께 커피를 마시거나 웃고 담소하는 것만 보아도 열불이 올라와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그전에는 출근길이 천당으로 가는 길 같았건만 이제는 지옥으로 가는 기분이라는 것이다.

일러스트=송준영 기자

그래서 그에게 화를 관찰하는 방법을 소개해주었다. 화가 올라오면 얼른 닉네임을 붙여서 '아무개가 화가 올라오는구나!' 하고 반복해서 염(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덧 화를 내는 것은 닉네임의 작용일 뿐이고 자신은 그를 지켜보는 관찰자 처지에 설 수 있게 된다. 즉 화를 객관적으로 통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화가 스스로 멋쩍어 슬그머니 가라앉게 된다. 더 이상 연료를 주입하지만 않으면 스스로 사그라지는 불과 마찬가지다.

얼마 후 그에게 물어보니 아직 관찰이 생각처럼 잘 안 된다고 했다. 당연한 일이다. 축구 선수가 평소에 부단히 연습을 해두어야 시합에서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평소에 연습이 전혀 없던 상태에서 갑자기 실전(實戰)에 맞닥뜨리면 어떻게 상대방에게 맞설 수 있겠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평상시에 마음을 관찰하는 연습을 거의 안 하고 있다가 화가 일어날 때에만 관찰을 하려니 될 턱이 있겠는가?

그래서 평상시에는 호흡을 관찰하는 연습을 하도록 권하였다. 이것은 마음을 코 밑에 집중하고 코로 숨을 쉬면서 들이쉴 땐 '들이쉰다', 내쉴 땐 '내쉰다'고 반복해서 염하는 것이다. 이른바 들숨날숨의 기둥에 마음 챙김의 밧줄로 묶어서 관찰하는 것이다. 이렇게 꾸준히 관찰하다 보면 마음도 편해지고 관찰하는 연습도 저절로 된다.

그는 내 조언을 받아들여 휴가를 내서 강원도 오대산 적멸보궁에 일주일 머물며 이러한 연습을 하였다. 일단 주변의 인연을 쉬고, 깊은 산중(山中)의 상서로운 기운을 받으며 꾸준히 연습하다 보니 마침내 조금씩이나마 그 맛을 느끼게 되었다. 아울러 화도 상당히 가라앉고 여인에 대한 애착도 점차 잦아들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회사에 출근하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제는 그 여직원과 남자 동료가 전처럼 함께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아도 아무렇지도 않게 된 것이다. 전에는 그들이 조금만 가까이 지내는 걸 보아도 열불이 나서 저것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고통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바뀌지 않았건만 내 마음이 바뀌니 고통이 사라진 것이다. 즉 그들 때문에 고통스러웠던 게 아니고 그 여직원에 대한 나의 애착 때문에 고통스러웠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려 차분히 대하니 이제는 오히려 그 여직원이 자신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다. 따라가니 도망가고, 놓아주니 따라온다고나 할까?

화(火)의 실상(實相)은 무상(無相)이다. 진실한 모습은 일정한 모습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실상무상'에 입각한 '자애삼매(慈愛三昧)'는 최상의 깨달음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붓다는 설하셨다. 그 방법은 가장 행복했던 때를 연상하며 다음과 같이 반복하는 것이다.

"내가 어려움에서 벗어나기를!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그가 어려움에서 벗어나기를! 그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지금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이 어려움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월호 스님·행불선원 원장

입력 : 2015.04.22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