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의 20% 정도는 항상 펀드에 투자하고, 보너스 등으로 주식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재테크에 열심이니 따로 은퇴설계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노후에 잘 살기 위해서는 재테크가 아닌 인생 전반에 대한 재무설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노인이 가난한 나라

희끗희끗한 은발이 멋들어지게 이마 위로 넘겨져 있고, 나이에 비해 잘 관리된 몸은 비싼 정장으로 감싸져 있다. 한적한 호텔 커피숍에서 여유를 즐기듯 테이블 위에는 커피 한 잔이 놓여 있고, 손에는 책이 들려 있다. 이런 사람을 보면 '와, 저런 게 바로 멋있게 늙는다는 것이구나. 여유가 있는 노후란 저런 거구나. 부럽다. 나도 나이가 들면 저렇게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노신사의 모습을 한 번쯤 자신의 미래로 그려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이 영화를 따라가기에는 너무나 벅차다. 벅찬 정도가 아니라 끔찍하다. 대한민국의 노인들은 지금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틈이 없다. 먹고살기 위해 하루하루를 투쟁하듯 보내고 있다.

전 세계에서 그래도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나라들이 모인 OECD. 우리나라 역시 거기에 속해 있다. 그런데 OECD 국가 중 노인들이 가장 못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OECD의 '노인층 빈곤도'가 평균 13%인데 우리나라의 노인층 빈곤도는 무려 45%나 된다. 65세 이상의 노인 중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일반 가구소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으로 노후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후가난에서 탈출할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재무설계 없는 노후에는 행복도 없다

옛말에 "가난은 나라님도 못 구한다"고 했다. 결국 가난에서 자신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라는 뜻이다. 노후의 가난 역시 스스로 바꾸어나가야 한다. 다행히 우리에겐 그럴 여력이 있다. 은퇴 후까지 주어진 시간이 있다. 문제는 노후를 준비할 시간이 주어졌어도 노후자금을 준비하기가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막상 눈앞에 닥친 지출 목록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나중에 있을 위험보다는 가까운 위험에 더욱 예민해지듯이 먼 미래보다는 지금 먹고사는 것, 지금 당장 필요한 것들에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은퇴 후의 노후보다는 집을 장만하고, 아이들 키우는 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단순히 재산을 불리는 재테크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미래를 위한 종합적인 재무설계가 수반되지 않은 재테크는 우리에게 풍족한 노후를 보장하지 않는다.

미국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백레이디를 한번 생각해보자. 백레이디는 남루한 옷차림을 한 채 여기저기서 주워 담은 물건들을 쇼핑카트에 싣고 등에 가방을 멘 채 거리를 배회하는 여인들을 말한다. 가족도 없고, 집도 절도 없는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등에 멘 가방과 쇼핑카트에 실린 남들이 버린 물건들, 그리고 희망 없는 하루다. 꿈도, 희망도, 자존심도 잃어버린 채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 이런 노후를 상상해보면 왜 노후준비를 해야 하는가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노후만 생각할 수는 없다. 내가 늙어서 편안히 살자고 현실을 비참하게 살 수도, 자녀들 교육을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다. 은퇴설계를 위한 노후자금 마련은 결코 모든 투자를 노후에 맞추자는 것이 아니다. 생활비, 교육비, 주택마련 자금에도 투자를 하되 노후자금도 동시에 준비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맹목적으로 재산 불리기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재무적인 관점에서 자산과 부채, 수입과 지출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각자 원하는 재무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리 계획하고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나는 40대에는 집을 살 거야. 60대에는 은퇴를 한 후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가고, 일 년에 한 번은 부부동반으로 해외여행을 가야지. 그걸 위해 지금부터 주택자금 마련에 얼마를 투자하고 어디에 투자할지, 은퇴 후 해외여행 자금마련은 얼마나 어떻게 할지 계획할 거야'라고 인생에 대한 구체적인 플랜을 세우고 그에 따라 목적투자를 하자는 것이다.

노후를 보낼 생활자금 마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단순하게 은퇴 후 쓸 여유자금을 불리기 위해 변액보험이나 펀드에 가입하지 말고 은퇴 후 얼마 정도의 생활비가 필요한지, 어느 정도의 소비를 하며 지낼지를 계획하고, 그러기 위해 매년 혹은 매월 생활비 용도로 쓸 일정액을 수령할 수 있는 연금에 가입하는 재무설계를 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