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조이산어록(正祖李祘語錄) - 인

"인(仁)은 전체적으로 말하면 의, 예, 지를 포괄하고 있는 것이어서 그 바탕이 매우 크다. 그런데 이 점을 모르는 사람은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으로만 치우치게 파악하고 있으니, 잘못이다."

공자는 천하의 도(道)는 한 가지 이치가 만 가지 일을 통한다고 말함으로써 인(仁)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말이라 하였다. 올바르다거나 현명하다는 등의 모든 것을 관통하는 가치로서 인(仁)을 말한 것이다.

『일득록』에서 정조는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법과 끌어당기는 법을 갑자기 들으면 사람들은 어떤 원리로 그렇게 되는지 모르지만, 자세하게 궁구해보면 자연 지극히 신묘한 이치와 그럴 수밖에 없는 형세가 있다. 지금 저울로 물건을 다는 데 저울추는 밤 한 톨 정도의 크기에 지나지 않지만, 적은 중량부터 많은 중량까지 무게를 모두 달 수 있다. 천하의 일은 진실로 알 수 없는 것이 있지만 그 이치를 말하자면 하나일 뿐이다." 하였다.

인(仁)이라는 것은 세상에 두루두루 통하는, 특히나 왕과 신하, 왕과 백성들 사이에 가장 중요한 가치임에 틀림이 없다. 선비로서 궁핍한 친구를 보고 눈을 돌려서는 '의롭다' 할 수 없고, 어려운 백성을 나 몰라라 하는 것도 의롭지 않다. 비록 정당한 일을 한 것이나 조금의 이익을 생각하고 그랬다면 그것 또한 의로운 것은 아니다. 의로운 선비란 청렴한 선비를 말하는 것이고 그래야만 인(仁)이라 할 수 있고 나아가서 바르게 산다고 할 수가 있다.

정조가 말하길 "친구 사이에 궁핍을 구휼해주는 것은 의(義)이다. 또한 서울에서 벼슬하는 사람이 만약 변방에 사는 친구에게 때에 따라 안부를 묻고 선물을 보내지 않는다면 어디에 의지할 것인가. 이뿐만이 아니라 친족, 친척, 빈객, 붕우가 추위에 얼고 굶주려서 거의 죽어가는 것을 또한 서서 보기만 하고 구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습속의 야박함이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하니 군자의 도 혹은 관리의 도는 인정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정조는 사람을 대할 때면 늘 마음을 바르고 고요하게 하여 진실함으로 상대를 대하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소통(疏通)하고 용서하고 깨끗이 하고자 하는 것은 저 무리들을 위로하여 기쁘게 해주려는 것도 아니고 저 무리들을 한데 묶어놓으려는 것도 아니다. 천지의 대덕(大德)은 '살리는 것'이라 하니, 그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정조가 살아가는 방식이 여기에 있다. 용서라는 것이 말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상대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던져지는 말도 아니다. 다만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존엄이며, 그것이 의(義)이고 인(仁)이며 도(道)라서 그렇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 (정조이산어록, 2008. 1. 25., 고전연구회 사암, 손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