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조이산어록(正祖李祘語錄) - 관계

"나에게는 남을 자기처럼 믿는 버릇이 있다. 한번 사귀었다 하면 곧 나의 속내를 남김없이 다 털어놓으므로, 이따금씩 도리어 폐단을 빚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서로 잘 지내자고 한 이상 어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선 역사에서 볼 때 늘 신하들의 힘이 왕권을 위협하거나 간혹 능가하여 패악이 있었다. 후기에는 그 신하들의 힘이 집단화되어 단단한 권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정치란 백성을 위해야 하지만 어느 순간 힘을 가진 권력집단의 행위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러한 '붕당' 중심의 시기에 정조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개혁을 이루고자 했다.

우암 송시열에 대한 평가는 후대에 극명하게 갈린다. 율곡을 계승한 주자학의 대가였지만 성격이 과격하여 정적이 많았고 예송논쟁 등으로 붕당정치의 정점에 오른다. 정조는 "우연히 송우암(宋尤庵)의 문집을 보다가 임충민전(林忠愍傳) 중에 '그 자세한 내용은 일록(日錄)에 있다'라는 대목이 있어 그것을 보니, 그의 순수한 충정과 아름다운 절개는 지금까지 사람들의 이목에 살아 있다. 배 한 척으로 바다를 건너가서 명나라 황실의 후예를 만나 천하의 일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하였으니, 비록 그의 뜻이 시행되지는 못하였지만 그의 큰 포부와 역량은 가히 세상에 드문 호걸스런 남아라고 하겠다."며 송시열을 평가했다. 정조 자신이 탕평책을 실시하면서 편협하지 않게 사람을 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 자신의 뚜렷한 주관으로 본다면 올바른 평가가 아니라 자신만의 주장이 된다. 하지만 정조는 진심으로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정조가 곁에 환관이나 여자를 두지 않은 것은 자신의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미쳐서 잘못된 판단을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정조는 오로지 자신의 생각과 신하들과의 토론 속에서만 결정을 하였다. 아첨하는 것을 태생적으로 싫어하여 곁에 두지 않고, 진실함으로 상대를 대했으며 자신의 말을 모는 자에게조차 반말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품성에서 조선 후기 '사람' 중심의 개혁의 바람이 분 것이다.

『일득록』에 "『정관정요(貞觀政要)』는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역사책이 아니라고 해도 괴상할 것이 없겠지만, 실려 있는 내용은 모두 아름다운 말과 훌륭한 정책이다. 성인은 사람이 신통치 않다고 해서 그의 말까지 버리지는 않았으니, 후세의 군주가 취할 만한 점과 본받을 만한 점만을 보아 행한다면 당 태종(唐太宗)이 선했는지 악했는지, 일을 기록하는 자가 진실되게 했는지 망녕되게 했는지는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였다. 이는 사람의 신분이나 나이 등에 구애되지 않고 진심으로 대하라는 말이다. 상대를 진정으로 대할 때만이 올바른 관계를 만들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관계 (정조이산어록, 2008. 1. 25., 고전연구회 사암, 손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