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강원도 평창에 있는 고루포기산을 등산했습니다.

사실은 고루포기산을 등산한 것이 아니라, 능경봉에서 고루포기산까지 가다가 중간에 돌아왔습니다.

평창의 알펜시아에서 워크숍이 있어서 참석했다가 일정이 오전 일찍 끝나서 근처에 있는 고루포기산을 간 것입니다.

알펜시아에서 출발할 때는 날씨가 맑았는데, 등반 출발 지점인 대관령(하)휴게소에 도착하니 안개가 자욱했습니다.

비가 오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평일이라 그런지 등반하는 사람이 거의 없더군요.

호젓한 산길을, 그것도 안개 자욱한 산길을 혼자 걸으려니 으스스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안개 낀 산길을 걸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저 아래는 날씨가 맑은데, 여기는 안개가 자욱할까?’

물론 자연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온도가 높은 낮은 지역에 있던 공기가 온도가 낮은 높은 지역으로 오면서 수증기가 응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좀 전문적인 용어로 하자면 ‘팬(fohn) 현상’ 때문이죠.

용평에 스키장을 세운 이유도 바로 이런 팬 현상 때문에 겨울에 평창 지역에 눈이 많이 내리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렇게 안개 얘기를 하는 이유는 안개를 보면서 떠오른 생각 때문입니다.

사실 공기가 낮은 지역에 있을 때에도 공기 속에는 안개(수증기)가 있었습니다.

다만 그 수증기가 공기 속에 실체를 숨기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죠.

하지만 그 수증기가 낮은 기온이라는 조건을 만나 제 형태를 드러내게 된 것이죠.

다시 말하자면 안개라는 속성을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낮은 기온이라는 조건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인간들에게도 공기 속의 수증기와 같은 여러 속성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속성은 평상시에는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다가 어떤 특별한 조건, 특히 시련을 만났을 때 그 본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을 평가하려고 한다면, 같이 여행을 해보거나, 게임을 해보면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평상시와 다른 상황에서 자신의 숨겨진 진면목(?)을 드러내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온실 속에서 자라는 요즘의 우리 아이들이 안타깝습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는데, 요즘 아이들은 젊음의 특권인 시련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실패를 한 번도 안 해본 상태에서 성공을 한 사업가가 나중에 크게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인생에서도 시련을 통해 단련을 해야만 진정한 성공의 길을 알고, 성공의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강한 칼은 무수한 담금질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냥 틀에 넣어서 칼을 만들면 보기는 좋을지 모르겠지만, 강한 물건을 자를 때는 바로 두 동강이 나고 맙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이 그냥 틀에 넣어서 만든 보기 좋은 칼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조금만 시련이 와도 금방 포기하고, 심지어는 자살까지 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대학이나 기업에서 인재를 뽑을 때 시련을 겪어본 인재를 소중하게 여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는 기업에서 면접을 할 때 재수를 했다거나, 창업을 했다가 실패를 한 후보자를 유심히 살핍니다.

그 시련의 기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보면 그 후보자에 대한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후보자가 그 시련을 잘 극복했다면 저는 후한 점수를 주는 편입니다.

한국은 벤처 창업이나 창의적 과제 제안이 발을 붙이기 힘든 풍토입니다.

벤처나 창의적 과제는 성공하면 성과가 크지만 실패의 확률이 높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벤처를 창업했다가 한 번 실패를 하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도록 만듭니다.

연구 과제도 이미 정해진 과정으로 진행이 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과제만 채택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실패의 소중함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적 풍토가 노벨상을 가로막고, 구굴이나 애플 같은 창의적 기업의 출현을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