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tv에서 죽음에 대한 강연을 시작할 때 ‘저는 사형수입니다.’라고 말을 했더니 방청객들이 눈이 똥그래져서 나를 쳐다봤다. 방송 녹화 도중이라 뭐라고 질문은 못하고 그냥 눈만 똥그래져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뜸을 들이다가 ‘여러분들 모두도 사형수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했더니 일부 방청객들은 무슨 뜻인지 알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느껴졌다. 아마도 내가 사형 선고를 받을 정도로 모진 사람이거나, 정치적인 운동을 했던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나온 것일 것이다. 이미 짐작은 했겠지만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했거나, 민주화 운동 때문에 사형수라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결국 죽게 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사형수라고 표현한 것이다. 사형수는 이유야 어떻든지 사형을 선고 받고는 실제 언제 죽을지 모른 상태에서 하루하루 살게 된다. 우리도 이미 죽는 것은 기정사실로 정해져 있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으니 사형수라고 표현한 것이다.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 받은 사형수들은 대부분 극악무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이 된다.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등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을 정도의 죄를 저질러서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하기 때문에 사형 판결을 내리게 된다. 물론 정치적인 이유로 사형 판결을 받는 경우도 있겠지만, 민주 사회가 된 대한민국에서는 더 이상 정치적인 이유로 사형수가 되는 일을 없을 테니까 이런 경우는 예외로 하기로 하자. 그런데 이렇게 극악무도한 죄악을 저지른 사형수들도 사형을 언도받고 나서는 대부분 착한 사람으로 개과천선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사형을 선고받고 나서는 죽음에 대해 절실하게 생각하게 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되돌아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죽음을 맞닥뜨리게 된 후에는 다른 사람을 죽일 정도로 죽음을 경시하던 사람도 삶에 대해 절실하게 생각하게 되는 게 아이러니이긴 하다.

내가 사형수에 대해 장황하게 얘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죽음’이라는 명제가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형수들이 죽음을 직시하면서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되듯이 우리들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자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된다. 좀 과장되게 얘기하자면 인간이 존엄한 이유 자체가 인간만이 다른 동물들과 달리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의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죽음이 없다면 인간의 삶의 의미도 많이 퇴색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내가 불교tv에서 행복을 논하는 방송 시간에 죽음에 대한 주제를 얘기한 것은 죽음을 떼놓고 인간의 행복을 얘기하는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나 자신이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한 건 아니다. 아니 그 동안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를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고 있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건 이렇게 삶의 가치를 높여주는 죽음에 대해 현대 사회는 거론 자체를 거부 하고 있는 풍조에 내가 물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내가 불교tv에서 죽음에 대해 강연을 할 때 의식적으로 ‘저는 사형수입니다.’라는 말로 시작을 한 이유도 바로 죽음을 얘기하면 바로 분위기가 가라앉을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가 죽음이라는 단어 자체를 회피하는 증거는 너무나도 많다.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을 예로 들면 4자가 한자의 죽을 사(死) 자와 발음이 같다고 해서 빌딩에도 4층은 없거나 영어를 써서 F층으로 표시하기도 한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거부한다고 해서 죽음 자체를 거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무리 인간이 죽음이라는 단어를 멀리하고 거부한다고 해도,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거부할 수는 없고, 오히려 죽음을 생각해야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데 왜 이런 풍조가 만연한지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