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의 시 '묵념 5분 27초' 라는 시가 제목만 있고 본문 내용이 없는 시입니다.
이 시는 1983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간행된 황지우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 실려 있습니다.
제목만 있고 본문 내용이 없는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첫째, 이 시는 광주 항쟁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목을 보시면 알겠지만, 묵념을 5분 27초 동안이나 한다는 건 너무 깁니다.
우리는 보통 묵념해봤자 30~40초 정도 밖에 안되는데 말이지요.
따라서 왜 하필 5분 27초냐 하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여기서 5분 27초는 바로 광주 사태(당시 신문들의 표현을 그대로 썼을 때) 직후,
군대가 투입된 날짜가 5월 27일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즉, 5월 27일 군대가 투입되어 무고한 시민들이 군화발에 짓밟혔기 때문에
황지우 시인은 5분 27초동안의 묵념을 통해서 그렇게 희생되신 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것입니다.

두번째, 위와 같은 내용을 본문에다 기재했을 경우,
당시는 살벌하던 군사독재 시절이었기 때문에 반드시 검열을 당해 삭제되었을 것입니다.
황지우 시인은 본문의 내용을 없애고 제목을 통해 위와 같은 주제를 암시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에 이 시를 대중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때로 시는 천마디보다도 더 값진 의미를, 단 한 줄의 글로, 혹은 말없음으로
이렇게 드러낼 수 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