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장(家長)

                     / 박신영

과수원 울타리에 심어

누렇게 잘 익었다며

오라버니가 보내준 호박 한 덩이

날마다 밥상을 차려내는 식탁아래 두었다

둥글고 단단한 평화가 겨울 내내

노랗게 빛을 내어 추위를 삭혔다

삭삭거리며 유리창을 긁는 바람

수분이라는 수분은 모조리 앗아간 어느 날

겉모양이 멀쩡한 호박에 거뭇거뭇한 반점 앉아

가까이 들여다보니 속이 까맣게 썩어 있다

아닌 척, 편안한 척,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척 했지만

남 몰래 홀로 앓고 있었구나

안으로 불어오는 외풍 막아서서

밥상 지키느라 세상에 부딪쳐 멍이 들었구나

아비로,

한 여자의 지아비로 지켜 내었을

한 남자의 가슴

안으로 썩어 까맣게 타버렸구나

속없이 쏘아댄 화살이 한없이 미안해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