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돌봄의 수단

대화는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돌보기 위한 전형적인 방식이다. 소크라테스는 단지 자신이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만을 안다고 하면서, 수많은 질문을 통해 상대방이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돌리도록(성찰) 하고 자기 자신을 돌보도록 만들었다.

실재로 대화는 자기 자신과의 진정한 만남으로 이끌 수 있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는 우리를 자신의 내면 깊은 곳으로 이끈다.

대화는 일종의 공적인 영적 훈련(communal spiritual exercise)이다. 영혼의 정화는 대화자가 솔직하고 진실하게 말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가다머, 『현대의학을 말하다』, 이유선 옮김, 몸과마음, 2002)

13) 파레시아(parresia)

파레시아는 솔직하게 말하기, 진실하게 말하기로 번역된다. 솔직하게 말하는 데에는 용기와도관련이 있기에 윤리적인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자기 자신을 돌보고 변화시키는 힘은 파레시아, 즉 진실하게 말하는 데 있다. 타자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자기 인식과 자기 돌봄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수사학이 ‘규칙화된 절차로 조직된 기술’이라면 파레시아는 기술이 아니다.

파레시아는 내용이 항상 진실한 것이기에 형식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다. 이보다는 진실을 듣는 개인이 진실을 허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최적의 순간에 최적의 형식과 최적의 조건에서 그 개인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파레시아의 중요한 규칙은 ‘적절한 순간(kairos)' 즉 시중(時中)이다. 파레시아는 타자와의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영혼의 치유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파레시아는 ’진정한 관계의 확립‘이라는 측면에서 영혼을 치유하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된다.

14) 파레시아를 통해 얻어지는 마음의 상태

파레시아를 통해 얻어지는 마음의 상태는 영혼이 평온한 상태에 이르는 것인데, 이런 심적 상태가 바로 아타락시아(ataraxia)이다. 이를 번역하면 ‘영혼이 동요되고 혼란으로부터 벗어난 평정한 상태’를 의미한다.

또는 퀘렌시아(Querencia)로 표현될 수 있다. 퀘렌시아는 몸과 마음이지쳤을 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 또는 그러한 공간을 찾는 경향을 의미한다.

스페인어로 ‘애정, 애착, 귀소 본능, 안식처’ 등을 뜻하는 말로, 투우(鬪牛) 경기에서는 투우사와의 싸움 중에 소가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는 영역을 이른다. 이는 경기장 안에 확실히 정해진 공간이 아니라 투우 경기 중에 소가 본능적으로 자신의 피난처로 삼은 곳으로, 투우사는 케렌시아 안에 있는 소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

투우장의 소가 케렌시아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음 싸움을 준비하는 것처럼, 임종환자에게도 남에게 방해받지 않고 지친 심신을 재충전할 수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은 다름 아닌 자기 존재의 발견과 그것과의 일치에서 느끼는 평온함이다.

이 평온함이 바로 소크라테스가 말한 ‘영혼의 온전함(쾌적함)’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지성소(至聖所) 같은 영성이 깃들어 있다. 신이 멀리 있지 않다. 바로 그곳, 거기에 상존한다.

15) 싸나톨로지스트의 자세

죽음학에서는 상실과 죽음 앞에 서 있는 단독자의 영성을 위해 다음의 태도를 요청한다. 판단중지 → 자기성찰 → 듣기의 기술 → 공감 → 존재로의 만남과 초대

16) ‘영적 돌봄 전문가’

이제 우리는 영적돌봄전문가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즉 임종기에 접어든 환자가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마음과 의식과 영혼, 정신이 쾌적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안내하기 위한 돌봄 전문가의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하면 환자의 자율적 주체성이 약화될 수 있다.

‘전문가(expert)’의 의미는 자신의 본성을 꿰뚫어보고 그것을 온전히 드러내어 실천(영혼의 건강과 아름다움을 지속)하는 것에 탁월함(arete/excellence)이 있는 사람(존재의 완전성 또는 사물의 자기 자신과의 일치와 탁월함(“그러고 보면 탁월함(arete)는 영혼의 건강의 일종이요, 아름다움이며 좋은 상태인데, 악함은 질병의 일종이요 추함이며 허약함인 것 같네.” 플라톤 지음, 박종현 옮김, 『국가』, 444P)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영적 돌봄 전문가는 제3자가 아닌, 임종환자, 혹은 일반인 개개인 자신이 되며, “자신의 정신과 의식(영혼, 혹은 영성)을 가장 쾌적한 상태로 지속하는 것(돌봄)에 탁월한 사람”으로 기술될 수 있다.

*위의 내용은 고려대학교 죽음교육연구소의 영적 돌봄 전문가 과정의 임병식의 교수의 강의내용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