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부터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갑(甲)질’이라는 말이 언제 처음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제는 불행히도 그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통용되는 말이 되었다. 갑질이란 갑을관계에서의 ‘갑’에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인 ‘질’을 붙여 만든 말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잊을 만하면 심심치 않게 등장하던 백화점 판매직원에 대한 고객의 갑질로부터 항공기 승무원에 대한 탑승객의 갑질, 고객은 아니지만 대한한공 오너 일가 전무의 승무원에 대한 갑질까지 적지 않은 갑질 사례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어왔다.
 
갑질에서도 빈번하게 많이 발생하는 대다수 사례는 고객의 갑질이라고 할 수 있는데, 2018. 10. 18.부터 시행되는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 규정에는 고객의 갑질로부터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규정이 새로이 마련되었다. 

흔히 말하는 감정노동자 즉, 고객을 직접 대면하거나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상대하면서 상품을 판매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산업안전보건법 제 26조의 2에서는 고객응대근로자로 규정하면서, 산업안전보건법과 대통령령으로 다음과 같이 근로자 보호를 위한 내용을 규정하였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의2(고객의 폭언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
① 사업주는 주로 고객을 직접 대면하거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상대하면서 상품을 판매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이하 "고객응대근로자"라 한다)에 대하여 고객의 폭언, 폭행, 그 밖에 적정 범위를 벗어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이하 "폭언등"이라 한다)로 인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② 사업주는 고객의 폭언등으로 인하여 고객응대근로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③ 고객응대근로자는 사업주에게 제2항에 따른 조치를 요구할 수 있고 사업주는 고객응대근로자의 요구를 이유로 해고, 그 밖에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산업안전보건법시행령
제25조의7(고객의 폭언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발생 등에 대한 조치)
법 제26조의2제2항에서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필요한 조치"란 다음 각 호의 조치 중 필요한 조치를 말한다.
1.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2. 「근로기준법」 제54조제1항에 따른 휴게시간의 연장
3. 법 제26조의2제1항에 따른 폭언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관련 치료 및 상담 지원
4. 관할 수사기관 또는 법원에 증거물·증거서류를 제출하는 등 법 제26조의2제1항에 따른 고객응대근로자 등이 같은 항에 따른 폭언등으로 인하여 고소, 고발 또는 손해배상 청구 등을 하는 데 필요한 지원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26조의2(고객의 폭언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
사업주는 법 제26조의2제1항에 따라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다음 각 호의 조치를 하여야 한다.
1. 법 제26조의2제1항에 따른 폭언등을 하지 아니하도록 요청하는 문구 게시 또는 음성 안내
2. 고객과의 문제 상황 발생 시 대처방법 등을 포함하는 고객응대업무 매뉴얼 마련
3. 제2호에 따른 고객응대업무 매뉴얼의 내용 및 건강장해 예방 관련 교육 실시
4. 그 밖에 법 제26조의2제1항에 따른 고객응대근로자의 건강장해 예방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

위와 같은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규정이 있기 전에도 사업주는 근로자에 대한 보호의무 내지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하므로, 근로자의 업무와 관련하여 신체적, 정신적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있을 경우 적극적으로 근로자를 보호하고 위해요인을 제거하는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고,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근로자에게 질병이나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근로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됨은 당연하였다. 일례로 아파트주민의 갑질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자살한 경비원에 대하여 근무지 변경 등 적극적인 보호조치를 하지 않은 사업주에게 보호의무 위반의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사례(서울중앙지방법원 2017. 3. 10. 선고 2014가단5356072판결)가 있다.

매출 감소를 염려한 사업주의 미온적인 태도로 인해 고객의 부당한 요구나 폭언, 폭행에도 정당한 항의조차 하기 어려운 감정노동자의 보호를 위해 사업주에게 적극적인 보호조치를 취할 의무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및 하위 법령, 규칙의 개정은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한걸음의 진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른바 감정노동자에 해당하는 근로자들에 대하여 산재(업무상 재해)가 인정된 사례들은 과거에도 있었는데, 구체적인 사안에서는 감정노동자의 특수성을 구체적으로 고려하였다기보다는 일반적으로 업무로 인한 과다한 스트레스 여부, 급격한 업무량 증가, 만성 과로 등의 발병 사유가 있었는지 등을 기준으로 삼아 판단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서울고등법원 2018. 4. 4 선고 2017누32311 판결에서는 이른바 대표적인 감정노동자인 콜센터 상담원의 업무상 재해를 판단함에 있어, 다음과 같이 감정노동자의 업무 특성 자체에서 기인하는 스트레스와 월요일에 대폭 증가하는 통화량과 이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부담 등을 구체적으로 인정하여 월요일에 뇌출혈이 발병한 콜센터 상담원에 대하여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였고 이러한 판결내용은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확정되었다. 
 

판결요지는 다음과 같다.
 
『A는 콜센터 상담원으로서, 재화나 용역을 구매하는 고객을 통화&통신 등의 방법으로 응대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실제로 느끼는 감정과는 다른 특정 감정을 표현하도록 요구되는 업무를 상시적으로 수행하는 이른바 감정노동자에 해당하는데, 응대 방식에서 지나친 친절을 강요받고 고객들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등 업무 자체가 A에게 상당한 육체적&정신적 부담을 주었을 것으로 보이고 약 10년간 동종의 업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히 누적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A가 업무 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여 폭언이나 성희롱을 하는 악성고객들의 민원까지 스스로 처리해야 하는 등의 사정들도 A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로 작용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점, 상병이 발생하기 직전 통화량과 통화건수가 전월에 비해 30% 이상 대폭 증가하고, 상병 발병일 당일은 월요일로서 다른 평일에 비하여 통화량 및 통화건수 모두 40% 이상 급격히 증가하였는데 A로서는 평소보다 과중한 업무강도 및 업무량을 소화해야 한다는 긴장감 및 압박감(속칭 ‘월요병’ 현상)이 더욱 컸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A가 업무 수행과 관련하여 상당한 정도의 육체적&정신적 부담과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았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위 상병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인할 수 있어 위 상병은 甲의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하므로, 이와 다른 전제에 선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은 위법하다. 』
 
발병 당시 A의 근무시간은 주당 약 39시간으로 동료들보다 업무량이 많지 않았고, 쓰러지기 전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휴무를 가졌다. 이전의 일반적인 사례와 같은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이러한 경우 A는 업무시간이 주당 39시간에 불과하여 단기 과로나 만성 과로가 인정되기 어렵고, 1심 법원은 이러한 이유로 A의 뇌출혈은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2심 법원은 A가 발병 전날까지 휴식을 충분히 취했고, 예상지 못한 악성 민원 등 돌발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월요일 당일 급격한 업무증가가 뇌출혈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월요일에 특히 40%이상 상담전화량이 증가하는 콜센터의 상담업무의 특성을 고려할 때, 근로자가 발병할 당시 고객의 특별한 폭언, 협박 등이 없었다 하더라도 평소보다 과중한 월요일의 업무량 증가 및 이에 대한 근로자의 심리적, 정신적 압박감 등이 뇌출혈의 원인이 되었다고 판단하였다는 점에서 감정노동자의 업무상 재해 인정 범위를 크게 넓혔다는 의미가 있다.

나정은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로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