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라는 말은 가장 잔인한 단어

갑각류인 홍게는 탈피과정을 겪어야 성장될 수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만만치 않아서 껍데기를 벗는 도중에 힘이 소진되면 죽는 홍게들이 너무 많다. 홍게들에게 성장은 죽음을 각오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혈액암 김태균씨는 매일같이 피를 뽑고 약을 면으면서 토하였다. 눈 앞의 피부가 가위질을 당하였고 사과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듯이 얼굴의 일부가 잘려나갔다.

22살이되던 2009년, 군 복무중에 머리와 목 주변에 혈액암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얼굴에 덮친 암 때문에 코뼈를 잘라내면서 여덟번의 성형수술을 하였다.

김태균은 평범한 학생이었다. 또래의 친구들처럼 MT도 갔고 PC방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으며 친구들과 술도 마셨고 어울려서 잘 놀았었다. 그리고 연애도 해보았다. 그런 와중에서 주변의 사람들이 알려주었다. 네 코에서 냄새가 지독하게 난다. 군대의 선임들과 후임들까지 질책을 가해왔다. 이를 잘 닦지 않아서 그래. 그런데 밀폐된 공간안에 있으면 가족들은 헛구역질을 해댔다.

2009년 12월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비인후과를 다녀왔는데, 혈액암 2기의 판정이 내려졌다. 의사가 말했다. 코뼈가 암으로 썩어 그 냄새가 코 밖으로 나온고 있어요. 그런 김태균씨에게 남들은 괜찮을 거라며 다독일 때마다 넌덜머리가 났다. 나는 왜 이래야 되지? 그러나 답은 없었다. 환자들에게 가장 잔인한 단어는 희망이라는 말이었다. 어설프게 던져주는 희망은 오히려 환자에게 절망만을 안겨주므로 너의 상황이 나아길 거라며 단정짓는 위로는 건네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말 속에는 자신의 상황에 안도감이 섰여있기 때문이다.

항암치료 두 달 뒤에는 대머리가 되었다. 폐가 쪼그라들자 병원에서는 갈비뼈 사이로 중지 굵기의 호스를 넣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너무 아파서 삼일간 미동도 하지 못하였다. 누워만 있었더니 나중에는 발이 띵띵 부어올라와서 슬리퍼도 들어가지 않았다.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되지? 절망이 찾아왔다.

4개월이 지나자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투병과 재발의 반복된 와중에서

더 이상은 못하겠다. 안 할 것이라며 청계산의 백운호수가에 방을 얻어

거기서 살았다.

명상도 하고 산책도 하면서 자유롭게 보냈지만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어 다시 의사를 찾아가자 의사가 진단을 내렸다.

이제 삼개월의 수명만 남았습니다.

그때서야 다시는 행복해 질 수 없겠다는 생각 때문에

분하기도 했고 억울하기도 하였다.

길 가운데 서서 얼굴이 퉁퉁 부어오를 때까지 엉엉 울기도 하였다.

언제 죽음을 맞을지 불확실한 삶의 연속이었지만

글을 쓰기로 작정하였다.

구토의 일과 함께 내 안의 나쁜 생각들을 모두 토해내려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적어나갈 결심을 하였다.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죽기전 무엇인가 세상에 남겨보자는 결심으로.

그런데 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이야기뿐이었다. 그리하여 솔직하게 적어나가기 시작하였다.

삶과 죽음.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희망대신에 피어오르는 절망의 기록들을.

위로 대신에 무괌심이 반가운 9년차 암환자의 생존기였다.

위로 받기 위해 쓴 글은 아니었지만

글을 쓰면서 남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모두 다 각자의 비슷한 슬픔들을 가지고 살아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아픔 보다 더 힘든 것은 외로움이었다. 육체의 고통은 어느 정도 지나면 면역력이 생겨서 버닐 수 있게 되지만, 외로움에는 면역력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너무 괴로웠는데 쓰면 쓸 수록 수면위에 드러나는 자신이 보였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글쓰기는 일종의 피난처였다.

<잘 생김은 이번 생에 과감히 포기한다>

이 책 한 권을 쓰고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대체로 슬픈 일이지만, 그런 속에서도 괜찮아. 행복해질거야라는 말을 해 줄 사람이 필요했고 그런 말을 해주는 아르바이트생이라도 있다면 고용하고 싶을 정도였었는데 돌아다보니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울켝하는 사람들오 있었습니다. 언제나 내 걱정이 우선인 아버지, 이룬 것이 없다고 말하는 나에게 왜 살아있잖아. 라고 말을 해주는 어머니와 동생. 너보다 오래 살아서 네 놈의 무덤에 침을 뱉아줄 것이라고 말하는 친구들. 관호, 승렬, 영하는 나에게 가족만큼 사랑할 수 있는 타인도 존재한다는 걸 가르쳐주었다. 나같은 사람도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생각하니 인생은 결국 혼자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새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쌍여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출처 : 2018년 12월 8일자 조선일보 B1, B4 기사와 <잘 생김은 이번 생에 과감히 포기한다> 김태균 지음. 페이퍼로드출판사.